평화한국


남북관계의 역사적 변천 과정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 연구교수)

 

 

□ 분단체제론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은 분단체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분단국 논리는 남한(한국)과 북한(조선)의 건국이 남북을 아우르는 통일국가로 수립되지 못하고 북한과 남한의 상대를 배제한 반쪽의 국가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통일은 언제나 완전한 근대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당연한 목표로 받아들여졌다.

남한과 북한의 보수진영에서 보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자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 정부이며 완전한 독립국임을 천명했기 때문에 상대체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는 불법집단이며 적성국이다.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미수복지역을 회복함으로써 완전한 국민국가를 성취하게 되고 따라서 통일은 국가적 목표로 설정된다.

이러한 분단국 내지 분단체제 의식은 남한과 북한의 진보진영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유되었다. 진보진영은 한국이나 조선이 법적·정치적으로 독립국임을 선포했지만, 실제로는 북쪽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정부, 혹은 남쪽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불완전한 정권이라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남과 북의 정권이 통일을 실현함으로써 진정한 근대 국민국가를 형성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분단체제의 형성

 

이러한 분단국 내지 분단체제 의식은 지난 60년간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기조가 되어 왔다. 분단체제란 남한과 북한이 완전한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가 둘로 나뉘어 불완전한 국가, 상호간에 대립·대결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분단은 지리적, 정치적, 심리적 대립·경쟁체제를 고착화시켰다. 1945년 3.8선이 그어짐으로 지리적 분단이 시작되었고, 1948년 남북의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정치적으로 분단되었으며, 1950-53년 한국전쟁으로 심리적 분단이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와 그로 인한 사회구조 및 정책의 변화를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한다. 전쟁체험을 통해 적대의식이 형성되었고 생존방식의 집단적 학습이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또 1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하여 가족분단으로 자리 잡았다.

분단체제는 적대적이면서도 휴전선이 마치 거울처럼 상대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체제로, 그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체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분단체제의 이러한 측면들은 거울영상효과, 분단효과, 전시효과 등으로 설명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군사 영역에서 상대의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응체제가 형성되었다. 비교효과란 체제 상호간에 경계심과 경쟁심을 유발시키고 그로 인해 상대방의 체제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남북의 역사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거울영상효과로도 일컫는데, 일방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대칭적인 반작용을 일으키고 또 그것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효과를 가리킨다.

1960년대의 군사정권, 1970년대의 수령제(북)와 유신체제(남), 경제전략의 모방-남한의 새마을운동과 북한의 외자도입정책, 1980년대의 신군부정권으로의 세대교체, 1990년대의 정치적 대응체제 등은 분단체제의 특성을 보여준다.

 

○1960년대

 

- 1961년 5월 군사혁명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의 군사체제 등장, 7월 중국·소련과 우호조약 체결, 9월 제4차 전당대회를 계기로 빨치산 세력 정치활동 시작

- 박정희 공화당 창당시 북한의 노동당 모방?

- 아시아적 발전모델로의 전환: 미국과 소련의 모델로부터 일본과 중국의 모델로의 경제발전 전략 변화

- 북한의 대남 무력혁명 시도, 군사적 갈등 고조

- 남북한에서 군부세력에 의한 독재권력 강화 시작,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 남북간 공식접촉 시작

- 1972년 10월과 12월 남한의 유신체제와 북한의 유일사상체계

- 북한의 외자도입형 발전전략과 남한의 대중동원운동

- 교육, 사회동원 정책

 

○1980년대

 

- 신군부의 등장, 신군부간 치열한 대립, 이한영 사건, 북한의 랭군암살 사건, 대한항공폭파사건

- 대내 자유화 조치, 개혁·개방 정책

- 88서울올림픽과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사회주의권 붕괴

 

 

□ 남북관계 발전 및 대북정책 설정을 위한 새 패러다임: 분단국체제

 

이처럼 적대적 공존관계를 바탕으로 유지되어 온 분단체제는 탈냉전 이후 협력적 공존의 성격을 띤 국가적 관계로 변화를 시작하였으며 세계적 탈냉전의 변동으로 가속화되었다. 즉 분단체제가 남북국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배경으로는 첫째, 1991년 9월 남북한의 UN회원국 가입을 지적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독립국 지위로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한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법적 조치는 남북한의 정치외교적 행위로서 실제로 남한과 북한이 완전한 독립국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이 유엔에 법적인 독립국으로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남한과 북한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는, 그래서 하나의 국가로 통일해야 할 불완전한 국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북한도 이러한 관계의 ‘특수성격’을 강조하며 국가관계를 넘어서는 민족관계의 지분이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UN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성격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는 남북관계에서도 분단체제의 성격변화가 발생했다. 탈냉전 이후 시작된 남북간의 고위급회담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타결한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할 것을 합의한다. 헌법조항과 형법, 국가보안법 등을 근거로 상대체제를 부정하던 기존의 남북관계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물론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관계를 국가적 관계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남북이 지니는 국가적 성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서문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통일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이는 남북관계에서 상대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되, 국제사회에서는 미래의 통일을 위해 불리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급적 민족관계를 강조해 나가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국제사회에서 잠정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행사해야 함과 동시에 국제법상으로 분단국이라는 특수지위를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셋째는 남북한 공히 사회내적으로 제도와 의식에 있어서 질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과 태도가 달라진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정부는 서울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는 세계적 탈냉전의 추세와 맞물리면서 한국사회의 대내외 환경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정부는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7월 7일, 이른바 ‘7.7 선언’을 통해 공산주의권과 외교관계를 개선하는 큰 변화가 있었다. ‘북방정책’으로 소련과 90.8, 중국과 92.9 수교.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89.9 지침, 90.6 법제정)하였다.

북한도 1990년대 들어 대남전략을 기존의 혁명전략에서 대화, 화해, 협력으로 전환하고 미군철수 등의 주장을 철회 또는 완화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도부나 주민의 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략적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그만큼 남북관계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 한국(남한)과 조선(북한)의 민족의식은 점차 옅어지고 국가의식이 강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대한민국’의 국가의식이 성장했고 1990년대 민주화의 진전과 경제성장이 뒷받침된 한류의 흐름을 타고 한국의 국가의식이 형성되었다. 2002년 월드컵축구를 통해 대한민국 의식은 한층 강화되었다. 북한역시 탈냉전 이후 조선과 공화국이라는 국가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이 활용하고 있는 민족담론, 즉 조선민족이나 김일성민족에서도 실제로는 조선과 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가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국체제의 성격

 

이처럼 남북관계는 기존의 분단체제로부터 분단국(남북국)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협력과 남북관계에서의 직접적인 교류협력이 이루어짐에 따라 분단체제 하에서의 체제경쟁 효과는 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 시기에 선거철이면 빠지지 않고 활용되었던 ‘북풍’의 문제도 최근에는 그다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국민의 민주화 의식이 성숙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남북관계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과거처럼 북한변수를 정치화하려는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북한·통일 문제는 여전히 남한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군사적 대응태세와 안보의식이 한국사회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정치와 군사, 문화 분야에서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반쪽의 나라가 분단체제로 존재하던 관념에서 벗어나 정상적 국가관계로 교류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분단체제가 남북국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치체제의 대응: 북한은 남한의 정권출범(2월)을 지켜본 후 그 해 9월에 정권을 출범하는 방식으로 시기를 조정하여 대응체제 구축

 

남북국체제의 패러다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구상이 필요할 것이다. 남북국체제는 언어와 역사, 전통을 공유한 하나의 민족이 다른 국가체제를 형성하여 특수한 국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따라서 남북한을 국가적 관계로 본다고 하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 미국과의 관계처럼 민족관계가 전혀 없는 국가적 관계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국관계란 민족관계를 일정부분 유지하면서 국가적 관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즉 남북국체제는 분단체제에서 남북연합통일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남한(한국)과 북한(조선)의 느슨한 국가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국체제는 남북의 국가적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분단체제와는 다르며, 통일을 미래가치로 두고 있지 않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통일을 당장에 실현해야 하는 당면과제로 설정하지는 않더라도 민족의식에 근거하여 통일을 미래의 잠재적 가치로 공유하고 있는 잠정적인 국가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의 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설정했을 경우 제기되는 문제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이 민족적 특수관계를 유지하지 않은 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고 주장하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지역에 대한 점유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손실을 안게 될 우려도 있다. 만약, 북한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 남한이 북한지역에 대한 권한을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남북한이 ‘잠정적 특수관계’임을 주장하며 단일민족 논리에 입각한 통일의 정당성을 점유해 왔는데, 남북국체제론을 강조하면 대외관계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협상력이 약화될 우려가 생긴다.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여 남북한은 유엔가입에 즈음하여 ‘특수관계’임을 강조하였다. 남측은 “남북한이 다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통일이 될 때까지의 잠정적인 과도조치이다. 남북한은 서로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통일지향적인 특수관계를 전제로 해 국제적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북한도 “민족내부문제인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를 두 국가 간의 문제로 보고 국가들 사이의 발전관계의 일반적 도식을 우리나라 통일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라든지, 서구라파식의 신뢰구축방안이나 동서독식의 통일과정을 모방하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지속시킬 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남북국체제는 근대국가 형성 이전 통일신라와 발해 두 나라가 형성했던 관계로 한국사에 처음 기록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던 신라와 발해의 관계는 전쟁을 치른 적대적 관계의 시기도 있었지만 점차 교류협력을 추진하면서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에는 근대 국가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국가관계와는 달랐겠지만 신라와 발해가 그후 고려로 통일되기까지 잠정적인 특수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를 ‘남북국시대’라고 부른다면, 현재의 남북관계는 ‘신남북국시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남북국시대에 형성된 신남북국체제는 통일을 미래가치로 갖고 있는 한국과 조선의 국가관계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신남북국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건국 60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남북한은 민족의식은 한국과 조선을 아우르는 단일한 민족의 호칭도 공유하지 못한 채 국가의식은 커질대로 커졌다. 남북국체제 속에서 남북한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접근하면서 어떻게 공통적 민족의식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향후 남북국체제가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은 양적, 질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 분단국체제의 발전

 

1990년대에는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93년), 김일성 사망(94년), 북한의 식량난과 고난의 행군, 남한의 금융위기와 IMF체제, 1998년 김대중, 김정일 정부 공식 출범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활발해졌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통일지형과 남북관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2000년 6월 이후 인적 왕래가 급증하여 연간 17만 명의 한국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금강산관광으로 북한을 다녀온 사람은 200만 명을 넘어섰고, 개성공단에서는 남측근로자 700명이 북측근로자 22,000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개성공단과 개성관광, 금강산은 자가용으로 DMZ를 통과하여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21차에 걸친 장관급회담과 13차에 이르는 경추위회담으로 남북 간 교역은 연간 17억 달러에 이르고, 2007년 5월 남북 간에 철도·도로가 연결되었다. 16차(07.10)에 걸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2만 여명의 가족이 상봉했고, 4만5천명의 가족에 대한 생사확인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를 남북 간에 논의하는 수준으로 진전되었다.

2005년 6자간의 9.19공동성을 발표한 이후 2007년 2.13합의, 10.3합의, 2008년의 북핵 불능화 진전 등으로 남북관계의 환경이 변하고 있다. 2008년 들어 부시대통령이 보여준 정책전환의 과단성을 보면, 미국이 이 문제를 매우 시급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로 북핵 불능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그 대가로 50만톤의 식량지원을 실시했다. 2008년 10월 11일에는 20년 동안 적용했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단행했다. 미국은 정말 변하고 있는가? 라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상당한 의지를 갖고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의 민주당 승리, 이라크사태 불리한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를 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 미국 편에서 보면 한반도 정책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은 중동과 중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중국-이란-러시아가 반미패권동맹을 형성하면 대단히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터키, 아제르바이잔, 이란,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바로 미중간의 패권전략의 최전선인 셈이다. 2010년 이후에는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무척 커질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부상하기 이전에 한국과 미국에 유리한 통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점에서 최근 미국이 한반도를 경제적으로, 나아가 정치적으로 끌어당기기 전략을 적극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으로 기울어진 한국경제를 FTA 체제로 흡수하고, 북한을 평화체제 협상 타결로 끌어들임으로써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의 정치지형, 통일 환경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신정부 5년 (2008-2012) 동안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협상이 타결된다면, 그 다음 정부(2013-2017)에서는 남북연합 형태의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 남북관계의 미래와 통일전망

 

분단체제 ⇒ 분단국체제 ⇒ 남북연합 ⇒ (남북연방) ⇒ 통일국가

 

통일은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하나로 결합되는 과정이다. 남북국 체제가 하나의 국가체제로 결합하는 방식은 연합제와 연방제를 들 수 있다. 연합제는 양국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한 채 상호 협력하는 협의체를 의미한다. 독립국가연합(CIS),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연방제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체제로 구소련, 미국, 독일 등 여러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남한은 연합제안을, 북한은 연방제안을 통일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북한은 연방제안을 1991년 1월 및 2000년 6월 김일성과 김정일에 의해 각각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 혹은 낮은 단계 연방제로 수정·제시되었다. 남북한은 모두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며 느슨한 국가연합의 형태로 통일을 시작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분단국체제를 넘어서 남북연합의 통일단계로 속히 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주변국의 외교·군사적 지원이 필요하고, 경제통합을 위한 재정 및 사회갈등을 줄이기 위한 남북주민의 통합정책이 필요하다. 통일과정에 필요한 비용마련도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 지불하고 있는 분단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리적, 경제·군사적, 사회심리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통일전략, 남북관계 개선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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